작성자 비전선교단
작성일 2015-12-22 13:4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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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69. 자리의 전복
내용

169. 누가복음 14:1-14 <자리의 전복>

                                                              조다윗 선교사
 
바리새인들의 우두머리들은 예수님을 정중히 집으로 초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예수님을 모욕주려는 데 그 의도가 있었다. 왜냐하면 배가 풍선처럼 불러오는 수종병 즉, 고창병 환자 앞자리에 예수님을 앉혔기 때문이다. 철저히 사회적 지위에 따라 자리가 배치되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관례상, 바리새인들의 총수 집안에 고창병 환자가 들어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신체에 치명적 질병을 가진 병자들에 대한 종교적, 사회적 격리를 당연시해온 것이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유전이었다. 따라서 창기들과 병자들과 어울린다는 예수님이 앉을 자리에 의도적으로 고창병 환자를 동석케 하고, 자신들은 높은 자리에 앉음으로써 자신들의 사회적, 종교적 지위의 우월성을 관철시켜 예수님을 초라하게 만들 의도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초월적 지위를 위해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도리어 예수님은 고창병 환자를 데려다가 고치심으로 그와 동류와 친구가 되셨다.
  자, 보라. 예수님은 꿈쩍도 안하셨지만 자리는 오히려 완전히 스위치, 전복되고 있다. 고창병환자의 풍선만한 배가 꺼져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잔치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놀람과 경탄의 파고를 일으켜 제일 상석에까지 전해졌을 것이다. 이제 높은 상석은 경청과 배움의 자리가 되고, 예수님이 앉았던 가장 낮은 자리는 강대상이 되어 가르침이 전해지는 곳이 된다. 바리새인들은 치명적인 질병을 고쳐 생명을 온전케 돌린 예수님의 파격적인 가르침 앞에 아무 소리 하지 못한다. 예수님이 베푸신 섬김의 낮은 자리보다 높아진 사역적 명예나 종교적 지식, 자기 정체를 드러내기 위한 사역적 입지는 모두 생명의 지평이 아니고 자기 그라운드일 뿐이다. 그곳은 아담의 정체성이 종교적으로 높아져 예수님의 자리가 협소해진다. 예수님의 생명을 섬기기 위한 십자가의 보좌보다 높아진 모든 자리는 종교적 아성에 접근하고 있는 위태한 자리다.


169. Luke 14:1-14 <Overturn of Seats>

  The chiefs of Pharisees seemed to invite Jesus politely but they actually intended to insult him. It was because they made a man suffering from dropsy whose body swelled like a balloon seated in front of Jesus.According to the Jewish customs, a person’s seat is arranged by their social positions. So, it was not possible for the sick man to come into the Pharisee’s house.  It was natural for them to isolate him for religious and social reasons. Therefore, they wanted to injure the authority of Jesus who got along with the sick and prostitutes by placing his seat alongside the sick while making their seats high to show off their religious superiority. But, Jesus didn’t care of his transcendental position. Rather, he brought the sick man near, healed and befriended him.
  See. Although Jesus did not mind where he was seated, his position was totally switched. All people must have been full of amazement and admiration due to his healing with such emotions spreading to the head table.  Then, the highest seat became a place where people listen and learn. And, the lowest Jesus’ became a place where he taught. The Pharisees couldn’t utter a word about Jesus’ radical teaching of bringing a life back by healing a fatal disease. If one’s high fame, religious knowledge and his position that shows off his identification are higher than Jesus’ serving at a low place, all are not for a life, but for his own self. And the place makes a human high in a religious way so that makes Jesus’ place narrow. Therefore, every place higher than that of the cross is risky as it is near a religious strongh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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