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조다윗 선교사
작성일 2011-11-08 15:3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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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계 디폴트 위기

문제의 원인-
탐욕적 투기성 경제 활동의 거대화

제1세계인 미주와 제 2세계인 유로존 내의 국가들의 연쇄적, 동시적 부도 위기는 지구촌 인류 공동체에게 절망감을 안겨다 주고 있다. 이미 오바마를 비롯한 미주와 서유럽 강대국의 지도자들은 리더쉽에 큰 타격을 받았다. 무능하다는 국민들의 눈총이 두려워 유로존 여러 국가로 확산되고 있는 위기에 대한 대응 능력을 과대포장하거나 위기 현실을 축소, 은폐하기 급급하다.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세계 선진국 리더쉽들의 애썬 낙관적 전망과 달리 세계화로 연동된 세계 경제 시스템 특성 상 영향은 세계로 확산될 가능성이 다분하고, 강대국 미국과 유럽국가들 조차 대응 능력을 상실했다면 글로벌 위기 앞에 나머지 제3세계, 제4세계 국가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전 지구촌에 팽배하다.

사실상 문제의 원인은 세계화에 따른 투기성 자본들의 탐욕적 경제 활동에 있었다. 경제 활동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근대 이후 절대적이었던 국가 권력의 대응 능력을 상실시켰다는 점에서 이 위기는 일종에 파워 게임 현상이다. 활동이 아니라 권력인 셈이다. 정치권력의 사회 콘트롤 능력이 경제 권력에 의해 무기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존은 세계화로 연동 단일화된 경제 환경 가운데 실물 경제를 견인하지 않고 기생할 뿐인 투기성 자본들의 탐욕적 경제 활동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3년 전 시작된 그리스발 경제 위기를 오늘 날까지 유럽의 정치권력들이 모여 해결 능력을 보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은 거대화된 투기 자본들이 경제 붕괴에 대한 책임을 지긴 커녕 연동된 세계 시장을 오고 가며 여전히 자신들의 몸집만 불리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부를 이제 1,2세계 국가 단위가 독점하고 조절한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세계 1%의 소수 인구, 특정 경제 단위가 세계 부의 절반 가까운 40%를 독점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대부분 주가 증시, 자원 투기, 부동산 투기로 얻은 돈들은, 다시 투기를 일삼아 선량한 사람들이 성실히 일해서 얻은 돈을 약육 강식처럼 먹어치우는 공룡이 되어버렸다.
미국발 경제 위기의 원인 역시 투기성 자본들의 탐욕적 경제 활동의 과열 때문이었다. 실물 경제에 기반 하지 않은 탐욕적 투기의 부동산 과열은 미국 경제의 붕괴를 낳았다.  미국 국가 권력은 세계 가운데 실물 경제 능력에 대한 계측 없이도 달러 마음대로 발행할 수 있는 독점적 경제 지위를 가졌음에도 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 문제에 대해 수습 능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세계화를 통해 세계 시장이 연동되고 자본에 대한 장벽을 거의 없애다시피 현재 국가 권력들은 도리어 거대화된 탐욕적 경제 권력에게 뒤통수를 맞고 공격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냉전 종식 때만해도 세계 황제의 권한이나 마찬가지였던 미국 대통령의 말이 일개 경제 신용 평가사의 말보다 세계에 신뢰와 영향을 주지 못하고 파워가 없다는 것은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의 위상의 역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새로운 시대성에 대한 표징이라 할 만하다.


중세와 근대 사이- 카노사의 굴욕,
현대와 미래 사이- 경제 권력의 급부상

역사적 시대성은 주도 권력의 변화에 따라 나타났다. 고대는 종교 권력의 시대였다. 중세 이후에는 종교 권력에 대한 인류 공동체의 누적된 불신을 틈타 정치 권력이 사회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중세 이후 카노사의 굴욕을 통한 종교 권력의 대정치 권력을 향한 굴복은 시대가 바뀌는 신호탄이었다. 정치권력이 종교 권력보다 우위에 서는 근대가 태동되었다.
경제 권력은 이들 권력 관계에 시녀 역할로서 편승했다. 경제 권력이 노골화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사회적 명분이 약했다. 경제 권력은 물질적 축적에 관계한 것인데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처럼 사회적 대의에 기여하는 공적 명분을 찾기 어려웠다. 경제 권력은 공공적 명분을 가장한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에 배를 불리우면서 독자적으로가 아니라 기생하는 채로 살아남았다. 따라서 경제 권력은 기생적이었지만 또한 제한적 권력의 속성을 지녀왔다. 항상 종교, 정치권력에 컨트롤을 받아왔던 것이다.
고대 사회를 생각해보라. 채집과 수렵 경제로 부족 공동체가 노루를 사냥했다고 가정하자. 어떤 자들은 몰이를 하고 어떤 자들은 사냥을 했다. 따라서 부족원 수대로 노루를 조각내어 나누었다. 그들의 노력 여하에 따른 보상은 현격한 차등을 지니기 어렵다. 인간 능력이라는 것이 별반 많은 차이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부족 구성원이 축적에 대한 탐심으로 노루 열두 조각 중 열 조각을 갖고자 했다고 하자. 부족 사회는 곧 갈등에 빠지고 이러한 요구가 지속된다면 사회적 저항은 겉잡을 수없이 커졌을 것이다. 이와 같이 경제 권력은 축적으로서 타인보다 차등적 우위에 서고자 하는 이기적 욕구라는 점 때문에 사회적 저항을 받아 독자적으로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경제 권력 의지는 노골화되기보다 종교 권력과 정치 권력이 사회적 명분을 주창하는 사이에서 기생해 활동해왔다. 
역사적으로 경제 권력의 주도적 부상의 시초는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한 상공 계층의 정치 세력화로부터 비롯되었다. 경제적 부를 기반으로 왕과 귀족으로 이루어진 정치 세력의 권좌를 떠받던 상공계층은 정치적 자유를 위해 시민계층이라는 대다수 경제적 빈곤 계층까지 아우르는 개념 속에 자신들을 숨기고 권좌를 끌어내리는 대중 선동을 시작했다. 당시에 주도적 정치 계층에 환멸을 느끼던 대부분의 하층민들은 시민의 자유라는 장밋빛 구호 속에 환상을 품고 시민 혁명의 주도적 힘과 역동성을 부여해서 상공 계층의 정치적 입성을 도왔다. 그러나 경제 계층의 정치 권력 장악은 일반 서민들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흘러 간 것은 결코 아니었다. 상공 계층의 주도로 이루어진 산업화는 대부분의 일반 서민들의 삶을 자유롭게 하기 보다는 희생시켜갔다. 10살 이하의 아이들조차 열악한 공장에서 하루 20시간 가까운 노동으로 희생되었고, 당시 일반 서민들은 고된 경제적 노동 착취를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 평균 연령 30세에 생을 마감했다.
상공 계층은 보편적 시민의 자유를 명분으로 왕, 귀족 등 기존 정치 세력을 몰아내지만 정치권력 장악을 기반으로 경제 권력을 더욱 독점했다. 왕정과 귀족정이 타도된 마당에 급부상한 부르주아 계층에 대한 견제 권력은 서유럽 내에서 한동안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이러한 세력을 견제하고자 일어난 흐름이 사회주의 운동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세력의 시작이 자본의 권력화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했는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한계 또한 분명했다. 혁명 이데올로기로서 노동자들의 울분과 분노를 자양분으로 한 만큼 폭력적인 방향으로 세계를 몰고 갈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결국 사회주의는 전 세계를 전쟁과 갈등으로 몰아간 후 권력 매개화라는 자기모순으로 붕괴했다.
사회주의의 실패로 인한 자본주의 진영의 일방적 승리는 교만을 불러왔다. 자본주의에 대한 과도한 확신으로 추진된 세계화는 국가 간 시장의 장벽을 허물고 세계를 단일 시장화해 규모의 한계나 공간의 제한 없이 자본에게 전폭적 자유를 부여했다. 따라서 현재는 거대 규모의 탐욕적 자본이 세계에 다소 해악이 되더라도 제어 장치와 안전장치 없이 무법천지처럼 전 세계 어느 곳이든 누빌 수 있게 되었다. 오늘 날에 경제 권력은 지역에 국한된 국가 권력에게 제어되지 않은 채 탈지역적, 범세계적 권력으로 부상하여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도 힘이 극대점에 이르렀다. 
이제 우리는 인류 주도 권력의 변화라는 시대와 역사의 전환점을 목도하고 있다. 고대와 중세 사이는 종교권력이 주도한 시대적 범주로 본다면 근대와 현대 사이는 정치 권력이, 현대와 미래 사이는 경제 권력이 인류 사회의 주도권을 갖게 되는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는 것이다.


문명권 국가 권력의 연동, 동조화

글로벌한 경제 문제가 등장하면서 세계 정치권의 대응 전략은 세계 권력 공조와 동조화로 흐르고 있다. 유럽이 하나된다는 것은 불과 5년 전만해도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역사적으로 서유럽과 동유럽의 갈등은 뿌리 깊은 것이었다. 유럽은 수 백년 간 종교 전쟁을 반복했다. 현대 1,2차 대전의 상대 적대국은 대부분 유럽 국가 대 유럽 국가였다. 이러한 반목과 불신의 역사를 가진 유럽 국가들이 하나의 정치 공동체로 결속된다는 것은 대부분의 학자들에게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유럽 지성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유럽은 하나의 정치공동체로 탄생했다. 민족 국가들의 외교와 무역, 정치와 경제 권한의 일부를 환원하고 유럽 미니 헌법이라 불리 우는 헌장에 각국 정상들이 각국 국민 투표의 결과에 따라 서명했다. 그리고 유럽 대통령이라 불리 우는 의장을 선출했다.
유럽의 뿌리 깊은 역사적 반목보다 하나가 되어야 될 어떤 동인이 자존심 강한 유럽인들을 자극한 것일까? 그것은 유로존의 경제적 문제에 대한 공동 대응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외부적으로 유럽 세계는 미국과 중국 등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큰 규모의 경제 통합이 필요했다. FTA를 통해 세계가 단일 시장으로 통합되기 위해 모든 제한과 장벽이 철폐되는 가운데 경쟁만이 세계 시장을 움직이는 유일한 법칙이다.
두 세계가 서로를 시장으로 인식하고 서로의 시장을 자유롭게 개방하는 협약은 서로가 상대방을 통해 인구와 자원과 자본을 갖춘 또 다른 시장을 얻게 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큰 시장의 규모와 작은 시장의 규모를 동등한 조건으로 개방하게 되면 아무래도 큰 시장의 규모를 가진 쪽에서 손해를 보는 셈이 된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유럽보다 규모가 큰 시장인 중국과 미국은 자유 경쟁을 위한 조건으로 유럽 각국과는 동등한 지위로 잘 협상하지 않는다. 굴욕적 조건을 걸어 유럽의 경제적 협상 지위를 낮추거나 동등한 협상 대상으로서의 자격을 부여하지 않으려 한다. 중국은 심지어 유럽 각국을 무시하고 유럽 전체를 대표할 협상 대표자를 요구하기도 한 전례가 있을 정도다. 자연스럽게 유럽 각국은 세계와 경제적 교류를 하기 위해서 유럽 세계 경제 규모를 대변할 정치 집단에 대한 필요성을 요구 받게 되었다.
또한 경제의 규모에 있어 유럽 각국은 미국과 중국 등에 문명권 병합한 제국들과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앞서 말한 대로 세계화 속에서 여러 나라들에게 합의된 단순한 룰은 단일 세계 시장을 만들어가되 경쟁에 따른 원리로 각국 시장을 개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체와 기업 민족국가는 모두 경쟁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아무리 능력을 갱신해도 규모의 절대 열세는 공정 경쟁을 불가능하게 한다. 유럽은 경쟁에서 밀려나 대부분의 부를 중국이나 미국에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따라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유럽은 경제적 규모를 병합해 공동 대응할 기조를 갖게 되었다.
내부적으로도 유럽은 탐욕적 경제 활동에 공동 대응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탈지역화, 글로벌화된 투기성 자본들은 국가 단위의 동조화를 통해서도 제어하거나 제한할 수 없게 거대화 되었다. 그리스 발 경제 위기가 일어날 당시 실물 경제 능력이 별로 없는 그리스에게 EU 자체 구제 금융과 200여국 회원국이 속한 IMF 구제 금융을 동시 투여해서 심폐소생하려 했다. 독일 총리 메르켈 주도로 그리스 실물 경제 능력의 의구를 표현하면서 빌려준 채권의 채무불이행이 오면 유럽 경제 전체에 위기가 확산될 수 있다는 구제 금융 투여의 신중론이 제기되었다. 2-3개월 정도 유럽 연합 내 정상들이 토론의 시간을 거쳤는데 그리스 발 경제 위기는 블랙홀처럼 스스로 증식해 커져갔다. 유럽 내 투기성 자본들이 돈을 빼고 철수했기 때문이었다. 애초 2000억 달러 규모로 논의되던 구제 금융은 5000억 달러까지 필요하게 되었고 결국 장기적으로 7500억 달러 규모에서 투여되기로 결정되었다. 시간을 두세 달이라도 지체해 붕괴규모가 커져 1조억 달러가 넘어 가면 인류공동체 대응 능력의 상실이 온다는 절박함이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음을 알면서도 투여를 시급히 결정하게 되었다.
유럽은 정치권력의 공조 연동을 통한 의사결정 구조도 글로벌화한 인터넷을 통한 가상 세계 속에서 시공간에 제한 없이 투자처를 결정하는 신속한 탐욕적 경제 활동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교훈을 얻었다.
한편 미국은 부동산의 투기와 그에 따른 증권 파생 상품의 기만으로 초강대국에서 일 순간에 부도 국가라는 위기에까지 몰렸다. 세계 경제를 연동 시켜 파생 상품은 세계 각처에서 투자자를 모집했고 실물 경제가 아닌 거품은 일순간에 터져 연동된 세계 경제로 뻗어나갔다. 파국에 대해 미국은 독자적 해결이 아니라 세계 권력들의 공동 대응을 주창했다. 이른바 G20의 출현이었다.  사실상 경제 권력에 대한 미국 국가 권력의 독자적 대응과 제어 능력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상시적인 투기성 자본의 활동에 비해 세계 정상들이 많아야 일 년에 한 번 가끔씩 모여 세계 의제에 대해 논의하는 G20체제는 단속적이고 임기응변의 대응 밖에 보일 수 없었다. 
뉴욕대, 옥스퍼드대 교수 등 세계적 경제 석학들은 문명권 국가 권력 동조화조차 대응 능력의 한계가 있음을 꾸준히 지적한다. 글로벌화 된 거대 경제 권력은 시공간의 제한 없이 탐욕적 축적을 위해 가상 세계에서 컴퓨터 키 하나로 결정을 내린다. 글로벌화 된 거대 경제 권력들의 불공정 행위를 막거나 제한하려면 정치 권력도 시공간의 제한 없이 거대화, 글로벌화 해야 하는 필요를 역설한다. 요컨대 석학들은 지역 권력이 아닌 세계 단일 권력 시스템으로 세계화 속 경제 권력이 잉태하는 부작용을 콘트롤하자는 제안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류 사회를 향해 절대적 세계 권력의 부여라는 점에서 더 큰 비극을 초래할 것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고언이 진부한 얘기만은 아닐 터이다.


통제 불능의 경제 권력과 희생의 강요

대부분의 부를 탐욕적 경제 권력이 장악하는 양상은 세계를 점점 더 혼돈과 어둠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국가 부도는 국가 구성단위에게 항상 최악의 대가를 치뤄야 하는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국의 6.25와 IMF 국가부도와 같은 위기 경험을 떠올려보라. 국가 존망의 위기라면 국민들을 비롯한 국가구성 단위들이 희생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이 과정에 예외란 좀처럼 존재하기 어렵다. 6.25 때 전란을 떠돌던 아이들, IMF 국가부도에 연이은 기업과 가정들의 연쇄적 파산은 비극적인 경험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현 상황이 아이러니 한 것은 전 세계적 연쇄 국가 부도 위기 상황임에도 일부 정점에 경제 권력은 세계의 고통과 무관하게 독자적인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미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들은 채무 불이행 요소들로 파산하거나 파산 직전의 위기까지 몰렸다. 그러나 애플은 미국 중앙정부보다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고통스런 현실을 마취하고 잊게 하기에 효과적인 가상 세계를 혁신이라는 명분으로 팔아치워 세계의 고통 속에서 기생하며 국가의 파산위기 속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권력도 근본적 제어 능력을 상실한 세계화의 부작용에 따른 파열음을 누가 책임지고 감당한단 말인가? 앞서 말한대로 탐욕적 경제 권력은 세계 디폴트 위기에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음에도 절제나 책임 의식이 없다.
다만 현 위기를 대응할 수 있는 기조는 인류 공동체의 힘없는 구성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방법뿐이다. 이빨 빠진 맹수에 지나지 않는 국가 권력은 국민들의 허리띠를 졸라 세금을 증대하여 무너진 경제적 파국을 수습할 최후에 방법들을 짜내 본다.  워크아웃을 통해 상시적 퇴출구조를 만들고 국민들이 경제 권한에 접근하기에는 현 상황이 나빠졌음을 호소하고 희생을 강요한다. 세계의 부의 대부분이 경제 권력에게 독식되고 남은 쥐꼬리 만한 부를 쪼개 인류 구성원에게 분배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 인류 구성원들은 세계의 자원과 기술, 부를 개발하는데 역사 가운데 어느 시대보다도 열중하고 있지만, 어느 때보다도 휴지조각처럼 쓰고 버려지는 경제 시스템이 활성화되어 경제적으로 희생당하게 되었다.

고대 이후 지역적으로 활성화되었던 제국 시스템을 상고해 보라. 제국은 인류에게 희생을 강요한 전형적인 시스템이었다. 성경의 제국을 향한 진술은 압축적이고 명료하다. 성경에서는 어느 제국이나 할 것 없이 맹수의 형상으로 상징되어 압축적 묘사로 그려졌다. 고대인들에게 맹수는 어느 길에서 만나건 마주치면 찢겨 죽임을 당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다만 제국은 아무리 팽창해도 대부분 문명권내 지역적 제약과 제한 있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주변 민족들은 제국의 번영과 패권을 위해 흡수 병합 당하면서 희생을 강요당했다. 하지만 극단적 갈등과 전쟁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제국의 병합이 늘어날수록 주변 민족과의 마찰과 저항은 켜졌다. 이 지점으로부터 통치 비용은 천정부지로 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 통치 비용을 만회하기 위해 더 많이 주변 민족과 전쟁하고 그들의 경제력을 차압했다.  결국 통치비용이 주변 민족의 경제력을 흡수 차압하는 것보다 높아지면 제국은 항상 붕괴되는 아이러니를 겪어왔다. 주변민족과의 갈등이 격화되어 전쟁과 갈등이 격렬해진 나머지 지역 문명권 밖으로 제국이 확산되는 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국가들의 경제적 붕괴는 범세계적인 현상이면서도 실체가 잘 들어나지 않는다. 많은 세계 구성원들의 희생을 담보로 하지만 제국처럼 명확히 들어나는 실체가 없어 저항과 갈등이 표출되지 못한다. 그러니 저항에 따르는 통치비용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여 영속적이다. 또한 제국은 지역적 한계가 있지만 탐욕적 경제 권력은 활동 무대가 글로벌화 했기 때문에 지역적 한계가 없다. 따라서 제국과 비슷하게 다른 존재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유지되는 세계화 속 투기성 자본을 통한 탐욕적 경제활동은 책임 의식이 전혀 없다. 인류 공동체가 창출한 실물 경제 능력을 먹어 치우고 그곳이 황폐화 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모든 탐욕적 경제 활동의 의사 결정은 현실 속에서 제어, 견제 받거나 저항 받을 마찰 요소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대로 누구든 인터넷을 통해 가상세계 속에서 경제적 권한(authority) 접근이 가능해졌고, 투기성 자본들에 대해 지역적 국가 권력이 콘트롤 의지를 가졌다 하더라도 투기성 자본의 주체가 컴퓨터 버튼을 눌러 다른 국가로 자금을 이동시키면 지역적 한계가 명확한 국가 권력으로는 막을 방법이 없다. 그리스를 시작으로 유럽 경제가 붕괴될 때 IMF 유럽연합 내의 구제 금융을 50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비용을 끌어 모아 겨우 임시조치를 취했다. 위기를 모든 유럽 국가들이 공조 대응하지 않으면 겉잡을 수 없는 확산으로 유럽 전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진단이 유럽을 들솥 끓듯 했다. 그러나 그와 중에 서유럽내 증시에서 수일 내로 수천억 원이 당시 천안함 사태로 국제사회들이 준 전쟁 상태로 간주했던 한국으로  들어왔다. 유럽 발 경제 위기를 전쟁 위협보다 위험한 상황으로 간주한 유럽 내 탐욕적 투기성 자본들이 동북아시아 일대로 투자처를 삽시간에 옮긴 것이다. 이른바 PIGS라 불리는 포르투갈, 이태리, 그리스, 스페인 연쇄 국가 부도를 걱정하던 서유럽 전통 강국들은 자본들의 책임의식 없는 탐욕적 축적과 독단적 행태에 배신감을 느꼈지만 조치할 방법이 없었다. 도리어 큰 규모의 돈들이 서유럽을 일탈하면서 중남부일대의 유럽 발 경제 위기가 아니라 자신들의 국가조차도 빌려준 채권의 채무불이행으로 파산할 수 있다는 위기설에 시달려야 했다.

인류공동체의 대부분의 부가 경제 권력의 탐욕적 구심력을 지닌 돈들 앞에 흡수되었다. 세계 경제는 1%의 인구가 세계 부의 절반 가까이를 장악하고 있는 기형적 상황이다. 따라서 보편 다수의 인류 구성원들에게 나머지 부와 경제 권한 분배는 더욱 냉혹해지고 있다. 제 일류 경제 대국인 미국 국민의 50%~60% 가량이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었던 일본은 70%의 국민이 장기적인 직업 같기를 포기한 채 하루하루 되는대로 살아가고 있다. 유럽의 소르본느 대학의 학생들은 자신들의 학위 관련 증빙 서류 등을 불태우며 2년제 고용법을 쓰고 버리는 쓰레기 소각 시스템이라며 학업을 포기한 채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했다.
세계의 강대국의 개체들조차 경제 권한 접근에 대해 근본적으로 제한 받는 시스템에 분노하고 절망하고 있다. 하물며 제 3세계, 제 4세계에 속한 개체들은 어떠하겠는가?
경제 권력 앞에 1,2세계 국가 권력도 대응 능력을 상실한 채 맥을 못추고 있다. 하물며 개체들이 희생당하지 않고 이 파워 게임을 조절하거나 피할 능력이 있겠는가?


짙은 어둠을 뚫고 더 강력한 빛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복음의 세계 경영

세계화를 통한 단일 세계 시장을 마음대로 오고 가며 먹어치우는 폭주하는 노골적 경제 권력, 제어능력을 상실한 국가들의 파국 위기, 대안으로 제시되는 세계 권력의 연동과 단일 통제 시스템, 희생당하며 신음하는 세계의 개체들, 세계를 둘러싼 어둠은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해 보인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세계 상황 속 비겁한 예외일 수 있겠는가? 희생을 강요당하며 일방적인 경제 시스템의 부품으로 살아가다 버려지는 사람들은 경제적 관점에서는 절망뿐이다.  또한 그들은 한정 없는 희생을 강요하는 세계 경제 상황이 더 이상 나아지기는 커녕 시스템의 요구에 아무리 자신을 끼워 맞추어도 계속 버려질 거라는 두려움 속에 살아가게 될 것이다. 시스템이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세계화의 불협화음은 국가 권력들 조차도 제어하기 어려운 시스템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강한 빛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은 세계를 구원하는 명료한 마스터 플랜을 가지고 있다. 모든 민족 가운데 복음이 증거되면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것이다.(마24:14) 이 길은 세계의 개체로서 생존투쟁하며 자신만 살아남는 졸렬한 길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함께 구원하여 일으키는 확실한 천국 혁명이다. 이미 구원받은 자신을 생존시키기 위해 세상에 경제 권한을 구걸할 것인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이 일어날 구원의 길을 택할 것인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질문에 답변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구원으로 하늘과 땅의 권세를 받아 모든 민족을 복음으로 구원할 혁명의 키를 가진 자들이다. 성도여 권세를 깨달을지어다.


*칼럼 내용은 책으로 출판될 예정이며 저자의 허락없는 도용 및 복제는 불허합니다*

   ▲ 중동 소요 사태를 통해 본 아랍 이슬람의 조명 조다윗 선교사  
   ▼ 이스마엘(단행본으로 발행될 소설의 예고 축약본입니다.) 조다윗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