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조다윗 선교사
작성일 2012-04-01 02: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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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동 소요 사태를 통해 본 아랍 이슬람의 조명

리비아-이슬람 부족주의와 내전

독재자 카다피의 최후는 참혹했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왕중의 왕이라는 호칭을 즐겨했다. 고대에 부족 할거시대의 혼란을 마감한 왕들이 자신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카다피는 왕이라는 다소 시대착오적인 호칭을 즐기며 절대 권력에 군림했지만 결국 부족들의 원한에 희생되었다.
중동 소요 사태를 민주화로 규정하며 개입하는 서구는 자가당착적이고 아전인수격인 과오를 저지르고 있다. 서구적 민주화 모델링을 중동사회의 대규모 소요의 원인과 결과로 받아들이며 힘과 패권으로 개입하는 것도 자가당착이려니와, 중동에 대한 이해와 도식도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단선적이다. 이러한 행태는 오랜 세월 중동과 서구 대립의 비극의 씨앗이 되어왔다.
독재자 카다피가 축출되고도 끝까지 그를 추종하는 일부 리비아인들의 미련스러운 충정과 카다피의 엄청난 은닉재산으로 회유 받고도 이미 권좌에서 쫒겨난 그를 끝까지 추격해 참혹하게 살육했던 또 다른 한편의 리비아인들이 보인 극단적 광기의 차이를 서구적 민주화의 열망으로 단순 도식하여 이해할 수 있겠는가? 독재자 카다피의 옹호와 축출 사이에서 리비아인들끼리의 내전을 종교나 정치, 민족 이데올로기가 잉태한 체제 대립으로 단순 대입할 수 있겠는가?
의도적인 체제(system) 이전에 자연 발생적 부족(tribe)이 있었다. 부족은 오늘날 서구적 헤게모니가 종교, 정치, 경제가 하나의 결집된 체제로 등장하기 훨씬 이전에 자연 발생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부족적 할거는 현대의 시간에서 펼쳐지는 양상이라고 하기보다 고대 코드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힘의 집중적 양상을 지니는 체제가 압도적으로 분산적, 할거적 양상을 지니는 부족을 제압하도록 힘을 결집해 승리하는 것은 서구적, 현대적 양상이기 때문이다.
아랍 이슬람은 역사적으로 부족과 종교 체제의 경계 사이, 교착지점의 산물이다. 무함마드의 생전,  A.D 7C 이전 아라비아 반도는 중동 패권 중심에서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중동의 형편은 기독교의 자양분을 먹어치운 빈 그릇처럼 문명의 나이로는 이미 노쇠한 동로마 제국과 옛 제국의 전성기를 향한 부활의 욕망이 꿈틀대지만 기독교의 정신성과 같은 깊은 종교적 자양분이 부족한 폐르시아 제국의 끊임없는 충돌이 지치고 지리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파괴적 에너지는 인류 공동체에 새로운 역동성을 부여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힘을 연동시키는 패권의 법칙을 따르는 제국적 체제 대결이었다. 그리고 동시대에는 이들을 대항할 세력이나 문명적 대안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무함마드는 이러한 중동 근방의 폐단적 문명 충돌 상황 속에서 분연히 일어나 유일신 사상과 아랍 중심의 사회 질서를 가지고 아라비아 반도를 재편하고자 했다. 중동 근방에는 노쇠한 문명의 힘들이 충돌하고 있었지만, 원시적 아라비아 반도 내부는 부족 사회의 반목과 불화의 연속이었다. 아라비아 반도의 부족주의적 세계관은 지나치게 극단적이어서 근친관계나 부족적 친화력이 있는 집단끼리는 폐쇄적일 정도로 구심력과 결속력이 강했고 배타적인 집단에게는 한번 불화와 반목이 진행되면 부족 대대로 원수가 되었다.
무함마드는 상인으로서 원거리 거래를 자주 다녔는데, 그때 접하게 된 유일신 관념과 아라비아 내부에 유입되어 온 비주류 기독교도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구약적 성경관에 매료되었다. 아라비아 부족 사회 내부의 끊임없는 은원관계에 따른 혼란과 반목의 요인을 종교적 불경건 때문이라 지적하면서 다양한 부족의 다양한 우상신들을 배제할 것을 촉구하였다. 부족적 갈등과 아라비아 반도의 혼란과 반목, 끊임없는 부족적 분쟁 상황의 원인을 다신 숭배로 인한 분열과 저주로 지목하면서 유일신 사상을 통해 부족간에 경계를 허물고 아라비아 반도의 통합을 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무함마드 자신도 기독교와 유대교의 유일신 관념과 부정확한 성경 정보를 차용했을 뿐 부족적 가치관과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조차도 자신을 이단적 자칭 선지자로 취급하는 아라비아 내 디아스포라 유대 부족에게 모멸감을 느끼고 전쟁 중에 항복한 그들을 무참히 살육, 멸족시켰다. 멸족당한 유대족속 중에 여인 하나가 무함마드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척하며 그가 좋아하는 양고기에 독을 발라 내어놓자 무심결에 이를 먹던 무함마드가 이상한 맛을 느끼고 내어 뱉었다. 그는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지만 평생 자신의 몸이 아플 때마다, 생의 마지막 순간 질병으로 죽어갈 때조차, 자신의 쇠락을 독살 미수 사건 때문으로 돌렸다. 평생을 독살 미수 사건에 대한 원한으로 살았던 것이다. 사실 무함마드는 유일신 알라의 사상에 적대적이지 않으면 부족적 관습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거의 용인했다.

무함마드가 이슬람 종교와 부족통합이라는 명분아래 중동전역을 무력으로 제패하면서, 이슬람은 그의 부족적 관습이 그대로 반영된 토양위에 종교체제로서 세워졌고, 지금도 중동 전역에 고스란히 안착해있다. 이슬람은 마치 세월의 이끼가 켜켜이 쌓인 것처럼 구심력이 강하며, 동일한 가치관과 획일적 라이프 스타일로 구성원들을 재편해 온 여타의 종교체제, 정치체제, 경제체제들과 상반된 차이를 지닌다. 이슬람은 중동 전역을 하나의 종교체제로 구축하면서도 할거적이고 배타적인 부족주의를 허용하고 독려했다. 때문에 이슬람과 다른 여타 체제들은 대부분 부족주의와 적대적이어서 공존보다는 극단적으로 혹은 점진적으로 해체하는 방식을 취했다.
예컨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구축하는 왕이 부족적 할거를 불편해하는 것은 뻔한 이치였다. 단일된 믿음과 카톨릭 양식을 고수하는 교황이 부족적 혈연 관계의 폐쇄성을 기뻐하지 않았다. 효율적 경제 체제를 신봉하는 자들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경제 이론가들은 예측가능하며 도식화 할 수 있는 경제 현상을 통해 생산과 분배에 일반적 경제적 구심력을 창출하기 원한다. 그들은 부족마다의 자급자족적 다양한 양태에 관심이 적다. 

중동 이슬람의 부족주의와 체제 교착점은 아프리카의 고대 원시 부족과는 다르다. 또한 서구의 합리적인 체제와도 다르다. 리비아의 내전에 대한 이해는 이러한 아랍 이슬람 내적 토양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되어야한다. 사실상 왕처럼 군림했던 카다피에 대한 적대 부족의 저항이 추동력이 되어 민의를 통한 리비아 독재체제 전복이 가능했던 것이다. 부족의 가문과 명예가 국가법보다 중요시되는 아랍인들에게 하물며 절대 권력의 카다피라도 부족의 적대세력이라면 타협의 여지가 없이 원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카다피가 잔인하게 살육된 이유는 물론 그의 폭정에서 1차적 원인을 찾아야 하지만 부족적 대립 양상에 따른 리비아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는 온전한 진단을 내릴 수 없다.
리비아는 위험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물론 카다피가 위험한 인물이긴 했지만 그의 축출을 대신할 마땅한 중앙 권위나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부족 집단마다 무기와 무력이 주어졌다. 그들은 고대코드로부터 내려온 가문 중심의 은원 관계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 또한 체제가 등장해도 자신들의 부족적 입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체제를 인정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리비아에는 여러 기원과 입장이 다른 많은 부족들이 상존해 있고 이 부족들의 다양한 요구를 모두 성취할 정부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체제를 안정시키려 해도 당분간 부족적 할거와 갈등의 양상이 리비아를 지배할 것이다. 혼란과 내전으로 치닫지 않도록 기도할 일이다.


아랍 민주화 혁명의 역설; 서구의 개입과 중동 독재 체제 극단화의 상승 작용

이러한 중동 전역의 소요 사태를 포괄적으로 민주화 혁명으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있다. 서구적 관점과 함의로 볼 때 튀니지로부터 촉발된 민의적 봉기는 아랍 전역의 독재적 권위에 대한 괄목할만한 민주화 과정의 도전일 수 있겠다. 소요와 봉기의 과정조차 정파적 조직이 구심력을 가지거나 대항 엘리트층을 중심으로 일어난 것이 아닌, 소셜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소통 구조를 통해 자발적인 형태로 추진됐다는 점에서 서구는 자신들 근대의 태동점이라 규정하는 프랑스대혁명에 비견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봉기의 원인부터 결말까지 면밀히 고찰해보면 아랍 사회의 서구를 향한 뿌리 깊은 불신과 피해의식이 도처에서 감지된다.
알다시피 튀니지 소요의 시작은 길거리에 내어 쫓긴 아랍 청년층의 경제적 막다른 골목에서 시작되었다. 내부적으로 아랍 정치의 무능, 특히 왕정과 군부, 종교적 독재 체제가 이슬람 내부의 부패와 국민들의 고단함을 가져 왔지만 이슬람은 종교적 자부심과 서구에 대한 뿌리 깊은 적개심으로 인하여 그 책임을 외부로 돌릴 가능성이 크다. 또한 서구 대 비서구의 경제적 불평등은 서구의 헤게모니와 서구가 추진한 세계화에 따른 경제 구조적 부작용에 따른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소요사태를 통한 국가적 변동을 경험한 나라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등을 보라. 이들 나라는 내부적으로 독재체제를 구가하였는지는 몰라도 서구에 대해 어떠한 이유에서건 친서방은 아니더라도 개방적 출구 정도는 열어놓은 국가였다. 내부적 소요와 불만이 확산될 수 있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등 중동 내에 극단적 독재체제를 구축한 나라들은 오히려 철저한 통제 속에 중동 소요 사태를 관리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 앞에 중동 내 폐쇄적이고 극단적 종교왕정 군부독재체제를 갖춘 나라들은 서구체제에 대한 경멸과 경계가 깊어질 것이다. 서구 민주화 모델이 이식되기는커녕 서구에 대한 커넥션 자체를 위험한 것으로 간주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서구는 언제든지 민주화와 패권이라는 야누스적 행태로 언제든지 자신들과 교류와 커넥션이 있는 중동국가들의 내부적 소요를 이용해 혼란을 가중시킬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역사적 축적은 일시적 시의성을 훨씬 뛰어넘는 거대한 힘이다. 중동 소요사태를 관망하면서 시의적 분절을 통해서만 사건을 읽는 것은 다분히 오판의 가능성을 불러올 수 있다. 역사적으로 서구와 중동의 갈등은 어떤 전쟁과 충돌보다 가장 뿌리 깊고 거대한 크기의 증오로 얼룩져 있다. 고대의 성경 기록이 증거하는 아브라함 가계의 이삭과 이스마엘의 갈등과 반목이 서구와 중동의 정신적 근원의 충돌이라는 것은 심각한 예언이다. 고대 코드의 기록이 역사 전체를 지배하는 주요 핵심코드가 될 줄 누가 감히 짐작했겠는가. 사실상 현대 인류 공동체에게 지난 한세기 동안 가장 큰 정신적 휴우증을 가져왔던 냉전기간 백 년의 이데올로기 갈등은 이삭과 이스마엘의 역사적 갈등에 비하면 역사적 길이와 충격 면에서 매우 미미한 상처였다.
가깝게는 이스라엘과 아랍의 갈등, 1‧2차 세계 대전을 통한 서구의 지배와 억압, 유럽 대 투르크의 대결, 십자군 전쟁, 헬라와 페르시아 제국의 대립 등 이슬람교를 수입한 중동 사람들에게 수천년 동안 서구는 타협할 수 없는 적대 세력이었다. 
대부분의 중동국가에서 서구의 개입은 불행한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다. 아랍의 왕정 종교 군부 독재자들이 폐쇄적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이유는 국민들이 그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내서라기보다는 서구 외세의 개입에 대한 반사이익의 결과다.     
그런 면에서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의 독재체제 붕괴로 서구 민주화 체제가 이식되고 있다는 발상은 순진하다. 중동 내에 대책 없는 절대적 독재 시스템을 구가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의 종교․정치 집권자들은 서구에 대한 적개심을 다시금 확인하고 노골적으로 백성들에게 학습시킬 것이다. 이라크와 리비아, 이집트 등을 둘러싼 혼란은 서구 세력의 개입과 내부 추동이 자신들의 권좌와 나라에 큰 혼란과 불행을 야기할 수 있는 위험한 접촉임을 주장하며 내부 단속과 페쇄성을 정당화할 것이다.
그렇다면, 중동권의 민심에 분출구 역할을 하는 청년들이 서구에 우호적이며 무분별한 추종을 보일 것인가. 답은 간단치 않다. 엘리트들이라면 세계화의 메커니즘의 부작용을 인한 제 3세계의 경제적 피해를 인지할 것이고, 중동 역사를 지식적, 경험적으로 물려받은 이들이라면 서구에 대해 우호적일 가능성이 별로 없다. 새로운 체제가 안정된다면 그들은 서구와의 커넥션을 불편해 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물론 서구는 자신들의 입장과 이익을 대변해 줄 누군가를 찾아 중동 신흥세력에 끊임없이 회유하고 야합하는 밀월관계를 요청하겠지만 그들의 대 중동 정책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진정한 신뢰를 얻는 것에 실패해 왔다.


예멘, 이집트, 리비아:
독재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독재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이슬람 극단주의가 가지는 폭력적 투쟁 양상을 볼 때 중동의 왕정, 군부 등의 독재는 불가피하게 이슬람 극단주의의 발흥을 억제한 측면이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은 종교적 신념에 따른다는 점에서 그 폭력의 정당화 양상이 극단적이다. 쿠데타로 군부 독재 정권을 열었던 나세르가 젊은날 한때 무슬림 형제단이라는 극단주의 세력에 관심을 보이고 그들의 활동의 반사 효과와 공조를 통해 이집트 정권을 장악했지만 그는 곧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위험성을 알고 그들을 탄압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무슬림 형제단으로부터 암살을 당할 뻔한 나세르는 이슬람 극단주의가 다른 정치체제와 타협하는 세력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철저하리만치의 탄압이었고 자신을 암살할지 모르는 정적에 대한 생사의 문제였다. 나세르의 정치적 동지이자, 군부 정권을 함께 열었던 샤디트 대통령은 이슬림 신앙기조를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해 무슬림 형제단에 대해 유화책과 압박책을 번갈아썼지만 결국 그들에게 암살 당했다. 이후 등장한 무라바크 독재 정권에 가열찬 압박을 받은 무슬림 형제단은 폭력적 노선을 철회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포스트 무라바크로무슬림 형제단이 가장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하면서 그들이 집권한다면 이집트는 그들의 극단적 폭력 노선이 부활할지 경계해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들의 폭력적 노선 회귀를 견제할 수 있는 이집트 세력은 군부가 유일하다.
리비아의 왕 중의 왕이라 칭했던 카다피는 부족적 할거라는 리비아의 정치적 분열 양상을 독재를 통해 컨트롤했다. 그는 서구에 대해서도 괴팍하리만큼 유연한 지도자였다. 때로는 서구에 대해 폭력적으로 대항하고 이익이 된다면 안면을 바꿔 그들의 환심을 사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독재체제에 위협으로 여겨 시종일관 적대했던 세력은 대항 부족 세력도 서구 세력도 아니었다. 그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자신을 몰락시키고자 하는 타협할 수없는 적대 세력으로 규정했고 그의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반응 속에는 극대주의 세력에 대한 두려움이 감춰져 있었다.
예멘의 양상을 보라. 중앙 정부는 민의적 소요에 대해 끝까지 저항하고 있다. 외교적인 술수, 권력을 이용한 탄압, 정치적 회유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해 민의적 소요 앞에 누란의 정권을 유지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정권 혼란을 틈타 알카에다의 전략적 거점인 남부 일대를 확보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독재 정권의 생명의 연장을 위해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느라 여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혹은 정권 혼란이 가져올 극단적 체제 등장에 대해 서구에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적 방관이 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모든 시도는 한마디로 위험천만할 뿐이다. 중동 체제에 유난히 종교, 정치, 군부 독재 정권이 많이 들어서 있어 백성들이 받는 통제와 압박은 고단하다. 그러나 대안 없는 소요의 추동은 단순한 민주화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서구와 중동의 역사적 경험이 다르고 프랑스 대혁명 이후 구축된 서구의 분권과 견제를 통한 민의적 통치 시스템은 오랜 세월동안 체계적으로 축적된 역사적 체제이다.
독재를 타도하지만 대안이 없다는 것은 종종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유리한 환경과 교두보를 마련한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정권화 과정에는 그들의 전략가들을 통해 사전 정권 체제의 혼란을 이용하는 전술이 주로 사용된다. 이란과 파키스탄, 수단의 경우를 보라. 그들은 정권의 대항 엘리트나 성난 군중들의 선동을 통해 정권의 혼란을 유도했고, 그 뒤에 통치 이념으로 이슬람 근본주의 부흥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이슬람 극단주의 통치 이념을 제시하면 되었다. 그것은 서구에 대해 불신과 이용만 당해온 역사적 피해의식으로 서구적 통치 모델을 따르는 것에도 부담이 있으며, 독재정권의 무능과 억압으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대중들과 대항 엘리트들에게 매력적인 대안 통치 모델링으로 읽혀졌다. 그들이 독재와 서구라는 이단적 통치 아래 불행했던 이유는 알라의 말씀인 쿠란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며 무함마드의 생전의 역사적 경험으로 돌아가 통치 체계를 만들 때 이전과 다른 통치가 임할 것이라는 설명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되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슬람 종교, 정치 지도자들이 말하는 쿠란에 입각한 통치라는 말과는 사뭇 다른 제안이라는 것을 언뜻 이해하지 못한다. 양심과 민족주의에 근거한 이슬람 체계는 쿠란을 교리적으로 재해석해 폭력적 역사와 기능을 교묘히 수정했지만,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쿠란 해석은 쿠란의 발생 시기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문자 그대로의 쿠란을 받아들여 폭력 사용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상상의 모델링이 아니다. 이란과 파키스탄, 수단의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집권과 유사한 정치적 발흥이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앞으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정권의 혼란을 이용하리라는 것은 당연한 접근이다. 빈 라덴이 죽기 직전에 한 성명 가운데 그의 관심이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 대한 투쟁과 더불어 중동 소요사태로 인한 통치의 혼란을 이용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그 정권을 추동해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정보들로부터 밝혀져 왔다. 이것은 빈 라덴의 사고방식으로 볼 때 의외로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 이슬람의 부패는 서구 세력의 개입 때문이며 이슬람 원리주의 통치에 의한 칼리프 체제로 복원하기에 앞서 이 모든 악의 머리이자 근원인 서구 미국과 이스라엘을 제거하는 것이 그의 투쟁에 1차적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투쟁노선 순서과정의 앞뒤를 바꿀 만큼 빈 라덴이 중동 소요사태에 대해 이슬람 극단주의를 세력화할 적합한 방법으로 보았다는 뜻이다.
중동 독재정권에는 두려움이라는 역설이 존재한다. 그들은 종종 통치를 위해 정권 존립에 위협이 되는 세력을 만날 때 두려움을 주기 위한 공포 정치를 사용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독재자 자신들도 대항 세력에 대해 극단적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슬람 부족주의와 율법의 저변은 가문과 명예를 더렵힌 존재에 대해서는 자비가 없다.
따라서 그들의 사고는 국가체제 보다 부족적 가문과 명예를 훨씬 실제적인 권위로 두고 따른다. 중동에서 어느 정도 부족과 율법적 체제를 견제하지 않고는 독재적 권력이라는 것은 존립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몇몇 부족에 대한 회의와 이슬람 율법의 수용과 타협을 통해 중동 내 독재정권이 생겼다 하더라도 정권이 전복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적대적 입장에 있었던 부족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중동의 율법적 사고방식이 독재자들을 권좌에서 끌어내릴 때 극단적 처형과 원수 갚음으로 처리하게 한다. 이집트의 나세르나 리비아의 카다피, 예멘의 살레 등은 모두 이러한 몰락을 경험하거나 비슷한 길을 걸을 것이다. 절대 권력이었던 중동의 독재자들도 실상은 중동의 소요사태로 표출되고 있는 이슬람 백성들의 끝 간 데 없는 분노를 두려워하고 있다.


통치 체계의 붕괴와 기독교

  지금 중동은 구질서가 붕괴되고 있다. 그들 나름의 새로운 질서도 모색될 것이다. 이슬람 종교 독재, 왕정 독재, 군부 독재, 서구적 모델링, 민의적 소요 등에 대한 상호 충돌로 이루어진 중동 소요사태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대안을 갈망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중동 땅에 해아래 새로운 통치 모델링은 극히 찾기 어려울 전망이다.
몇몇 중동 내부의 기독교인들은 질서의 붕괴로 인한 애꿎은 화풀이 대상이 되어 핍박을 경험할 것이며 이것은 그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할지 모른다.
복음이 증거되기 위해서 구질서의 관성과의 충돌과 핍박은 언제나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애매한 핍박의 대상이 되어 사회적 약탈, 이민이나 유민 등 극단적 희생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이집트와 시리아에서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이유없는 공격이 있었다. 중동의 기독교인들은 오래도록 이슬람 체제에 적응하기 위해 복음전파에 적극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서구에 대해 오래된 반감이 있는 중동 곳곳에서 민의적 소요를 통한 정권 전복을 민주화로 표현하는데 별로 거부감이 없다. 민주화는 다분히 서구적 용어이며 상황적 해석이다. 이 정도로 중동 전체가 서구 관념에 긍정적이고 포용적인 태도를 취한 적은 극히 드물다. 더 이상 이슬람 사회에 기독교가 곧 서구체제라는 오래된 오해는 진실이 아니다. 이슬람은 외면적으로 기독교를 모태로 차용 변용된 종교체제이고 그들은 신 자체를 배제하는 서구적 합리화에 비해 유일신을 인정하는 기독교에 훨씬 친근성을 가질 수 있는 경향도 있다. 새로운 질서를 갈망하는 중동에 대해 서구가 힘으로 접근한 오해를 희생과 포기의 복음이 풀어줄 수 있다. 복음을 통한 예수님의 진정한 통치를 말할 기회인 것이다.
중동 소요사태로 인해 중동에는 더 이상 땅의 절망적인 아담의 체계가 아닌 하늘의 복음으로 쓰여 지는 새로운 질서가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 어떤 기독교인은 단지 위험하다고 말하고, 어떤 기독교인은 복음으로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접근할 것이다.


*칼럼 내용은 책으로 출판될 예정이며 저자의 허락없는 도용 및 복제는 불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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